▣ 원각경(圓覺經) - 원만한 깨달음
예로부터 불교 전문 강원 사교과(四敎科) 과정의 필수과목으로 학습되고 있는 경으로 우리나라에서 유통되고 있는 것은 693년 북인도의 승려 불타다라(佛陀多羅)의 한역본이나, 이것의 산스크리트어 원본이 없으며, 그의 역경(譯經)은 오직 이 원각경 한 권뿐이고, 더구나 이 스님에 대한 기록도 오직 경전 목록집인 개원록(開元錄)에만 나오고 있기 때문에 중국에서 만든 위경(僞經)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현재 불교학계의 연구 결과로는 능엄경(楞嚴經)과 마찬가지로 범어 원전을 발견할 수 없어 중국에서 찬술(撰述)된 경으로 그 성립 시기는 8세기 초에는 이미 성립(成立)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경은 고려의 지눌(知訥)이 깊이 신봉하여 요의경(了義經)이라 한 뒤 우리나라에서 크게 유통되었고, 조선 초기 함허 화상(涵虛和尙)이 원각경소(圓覺經疏) 3권을 짓고 유일(有一)과 의첨(義瞻)이 각각 사기(私記)를 지은 뒤 정식으로 우리나라 승려의 교과과목으로 채택되었다.
이 경이 널리 독송, 연구되고 많은 주석서가 만들어져서 불교 수행의 길잡이가 되었던 것은 이 경이 훌륭한 이론과 실천을 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문체가 유려하고 사상이 심원하며, 철학적으로나 문학적으로 뛰어난 작품이기 때문이다.
깨달음의 마음은 동요(動搖)가 없다. 선남자여, 일체중생들의 갖가지 실체 없는 허깨비 같은 것들이 모두 여래의 원만한 깨달음인 미묘한 마음 그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니 마치 눈이 피로해졌을 때 헛것으로 보이는 허공의 꽃이 허공에서 나와 있는 것 같으니라. 허공의 꽃은 결국 없어지는 것이지만 허공(虛空) 자체는 없어지지 않는 것처럼 중생들의 허깨비 같은 마음이 다 없어져도 깨달음의 마음은 아무런 동요가 없느니라.
원각경(圓覺經) 보현장에 나오는 위의 구절은 중생들의 갖가지 생멸 경계가 불생 불멸하는 각성(覺性)을 의지해 있다는 것을 밝혀주는 말이다. 원각경은 허깨비라는 뜻의 환(幻) 법문으로 유명한 경전이다. 이 허깨비를 알아버리면 허깨비가 사라져 바로 깨달은 이의 자리가 드러난다는 돈오(頓悟)의 이치를 설해 놓은 경이라 하여 예로부터 돈교(頓敎)라고 교상판석(敎相判釋)을 해온 경이다.
원각경의 갖춘 이름은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이라는 긴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이를 줄여서 원각수다라요의경, 원각요의경, 원각경 등으로 약칭하고 있다.
그 경명(經名)을 풀어보면 대방광(大方廣)은 원각의 체(體), 상(相), 용(用)을 가리키는 말로써, 크고도 넓은, 즉 광대무변하다는 뜻이고, 원각은 완전원만(完全圓滿), 깨달음을 뜻하며, 수다라(修多羅)는 범어의 수트라(sutra)를 음사(音寫)한 것으로 경(經)을 말하고, 마지막 요의경(了義經)이란 불법의 도리를 명백하고 완전하게 말한 경이라는 의미인데 앞서의 수다라(經)와 중복(重複)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를 정리하면 일체중생의 본래성불(本來成佛)을 드러내는 원각(圓覺), 즉 원만한 깨달음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가장 뛰어난 경전이라는 뜻이 된다. 그런데 경의 제목에서 원각이라는 말은 화엄경의 원만수다라(圓滿修多羅)에서 따오고, 요의는 능엄경에서 따왔다고 전해지고도 있다.
이 경의 현존 본으로는 1380년(우왕 6) 이색(李穡)이 지은 발문이 있는 판본을 비롯하여, 세조 연간에 을해자(乙亥字)로 간행한 활자본과 1464년(세조 10)의 간경도감판(刊經都監版), 1465년 을유자(乙酉字)로 찍어낸 활자본 등이 있다.
현존하는 경판으로는 청도 운문사(雲門寺)에 1588년(선조 21)에 판각한 경판이 보존되어 있으며, 하동 쌍계사에서 1611년에 판각한 것과 순천 선암사에서 1655년에 판각한 경판이 보존되어 있다.
◆ 원각경은 현재 범본(梵本)은 전해지지 않고, 유일하게 한역본밖에 없기 때문에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유명한 주소(註疏)들이 남아 있는 경이지만 그 진위(眞僞) 여부가 일찍부터 거론(擧論)된 경이다.
이 경전을 유포(流布)시킨 이는 중국 화엄종의 규봉 종밀(圭峯宗密) 스님인데, 어느 날 사찰의 경전을 보관하는 경장(經藏) 속에서 우연히 원각경을 찾아내고 더할 수 없는 환희심(歡喜心)을 일으켜서 오로지 일생을 원각경 연구에 몰두하여 많은 주석서를 남겼다. 이 경(經)도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 매우 중시해온 경으로 중생(衆生)들의 무명(無明)을 끊고 불성(佛性)을 드러내게 하는 대의(大儀)를 가지고 있다.
원각경은 1권 12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크게 삼분(三分)하면 서분에서는 이 경을 설하게 된 취지를 설하고, 이어서 문수보살을 필두로 하여 열두 보살이 차례로 부처님께 청법(請法)을 하고 그 질문들을 중심으로 부처님께서 대답해 주시는 형식의 정종분을 설하고, 마지막 유통분은 경전을 후세에 유포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로 믿고 받들어 행하는(信受奉行) 방법과 수지 독송의 공덕을 설하는 내용이다.
경(經)의 내용은 12명의 보살이 등장하여 부처님과 문답을 나누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먼저 12장(章)의 각 보살들이 부처님께 드린 질문을 살펴보면,
제1장은 문수보살이 법회 대중과 말세 중생들이 번뇌의 병을 멀리 벗어날 수있는 방법을 여쭙고,
제2장은 보현보살이 말세 중생들의 수행하는 방법을 물었고,
제3장은 보안 보살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하는 중생들을 위해 어떤 방편을 써야 할지를,
제4장은 금강장 보살이 앞장에서의 부처님 설법에서 일으킬 수 있는 3가지 의심을,
제5장의 미륵보살은 윤회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제6장은 청정혜 보살이 여러 가지 인간성의 차별에 따른 깨달음의 차이를,
제7장은 위덕자재 보살이 점진적인 수행 과정을,
제8장은 변음 보살이 원각문의 수행법을,
제9장은 정제업장 보살이 법회 대중과 말세 중생이 장래 의지할 안목을,
제10장은 보각 보살이 어떻게 발심해야 그릇된 길에 빠지지 않는지를,
제11장은 원각 보살이 안거(安居) 방법과 3가지 관법수행을
제12장은 현선수 보살이 이 경전의 유통에 대하여 여쭙는 내용이며
답으로는 처음 문수 보살장에서는 여래의 인행(因行)을 밝히면서 원각을 닦는 자가 중생계의 모든 현실이 허공의 꽃이요, 꿈과 같고 허깨비인줄 알면 생사윤회가 없어질뿐만아니라 생사가 곧 열반(涅槃)이고 윤회(輪回)가 곧 해탈(解脫)
제2 보현 보살장에서는 원각(圓覺)을 닦는 방법 곧 관행(觀行)에 대하여 설(說)하고 있다.
제3 보안 보살장에는 원각(圓覺)을 닦는 자 곧 수행자의 사유(思惟) 방식을 설하면서 이 세상 모든 것이 무상(無常)하다고 보아 일체 집착(執着)을 버려야 한다고 했다. 이 보안장의 구절을 발췌(拔萃)하여 별도로 유통시킨 무상계(無常戒) 법문
제4 금강장 보살장에서는 3가지 의심을 제기하는 내용이 있다. 만약 중생(衆生)이 본래 성불(成佛)한 것이라면 왜 다시 중생(衆生)에게 무명이 있다 하는가? 만약 중생에게 본래 무명(無明)이 있는 것이라면 어찌하여 본래 성불이라 하는가? 만약 본래 성불에서 다시 무명을 일으켰다면 여래는 언제 다시 번뇌를 일으킬 것인가? 이 같은 의문(疑問)을 제기,
제5 미륵 보살장에서는 윤회(輪回)를 끊는 방법을 제시하고
제6 청정혜 보살장에서는 성문, 연각, 보살, 여래, 외도의 5성 차별을 설한다.
제7 위덕자재 보살장에서는 각성을 수순하는 방법인 사마타, 삼마발제(三摩鉢提, 등지, 마음이 들뜨거나 침울하지 않는 평온에 이른 상태), 선나(禪那, 마음을 한곳에 집중하여 산란하지 않는 상태) 곧 적(寂), 정(靜) 환(幻)의 삼관(三觀)을 설함
제8 변음 보살장에서는 삼관을 홑으로 닦고 겸하여 닦으면서 어는 것을 먼저하고 나중에 하는가 하는 근기에 맞춰 관을 닦는 25륜(二十五輪)에 대한 설명이 있다.
제9 정제업장 보살장에서는 말세중생을 위한 안목을 설하는 장래안(將來眼)에 관한 설명이 있고
제10 보각 보살장에서는 원각을 닦는데 있어서의 주의해야 할 4가지 병에 관하여 설한다.
제11 원각 보살장에서는 안거(安居)하는 방법에 대하여 설하고 제12 현선수 보살장에서는 경의 이름을 수지하는 방법과 경을 수지하는 공덕에 대하여 설한다
◆ 원각경이란 지금인 당신을 설명한 것이다.
만약 원각경이 이런 것이다. 라고 설명한다면 그것은 당신은 이렇다. 라고 말하는 것이다. 풀 한 포기가 다 서로 다르듯 우리 모든 중생은 무엇이 달라도 분명 다른 면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한 찰나인 지금에서 숨 쉬고 자라고 울고 웃으며 세상이 이런 것이라고 나름대로 자기의 열매를 익혀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 당신을 평가하고 당신을 매도하고 다른 이가 이러니 너도 그래야 된다고 말할 수 있으며 당신은 이런 것이라고 결론을 지을 수 있는 존재가 있겠는가?
당신의 존재가 있다면 어느 것이라고 하겠지만 당신의 몸이란 물질의 화합이고 당신의 정신이란 물질도 아니기에 보이거나 만져지지도 않는 것이다. 그러니 당신이 이런 것이다. 라고 말하는 이 정신은 실제로 물질이나 물건으로 있는 것이겠는가?
그리고 물질이란 그저 쇠나 돌처럼 단지 물질이기에 당신의 정신을 당신의 몸에서부터 단절시키면, 즉 기절되면 몸을 온갖 벌레가 서로 먹이를 삼아도 아깝다거나 분노가 난다거나 하는 일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정신이 있어 아무리 내가 몸이다. 라고 한다고 할지라도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 장본인은 정신인 것이므로 몸과 같은 물질이 아니니 죽고 사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면 화가 날 것도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의 모든 생각은 생각이 몸이라고 착각한 것으로 인한 것이니 그 착각이 올바른 이해로 변화된다면 몸은 움직이지도 않은 채 득도하게 된다는 말이 돈오(頓悟)라고 하는 것이다.
이런 말이 원각경에 있다.
지환즉리(知幻卽離)이니 불작방편(不作方便)이요.
이환즉각(離幻卽覺)이니 역무점차(亦無漸次)라.
세상이 환상인 줄 알면 곧 그 환상에 사로잡혀 얽매였던 것에서부터 떠나는 것이니 따로 도를 닦으려 방편을 지을 것도 없고 이미 환상에서 떠났다면 그것은 이미 깨달음인 것이니 역시 차근차근 수행해야 할 것도 없는 것이다. 이것은 지금인 이 세상이 꿈이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꿈인 이 세상에 집착이나 분노를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를 아는 것이므로 따로 이 꿈을 깨려고 할 것도 없어진 것이니 마음 놓고 꿈인 이 세상을 즐길 것이고 이렇게 꿈을 즐기는 마음은 환상에 사로잡혀 꿈이면서도 꿈인 줄 모르는 이들처럼 힘들어하지는 않을 것이므로 꿈을 벗어났다 하리니 이것을 이름하여 각(覺) 즉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이므로 역시 꿈 하나하나마다 꿈이라고 깨달아야 할 것이 없는 것이라는 말이다.
이것이 원각경의 요점이라 할 것이지만 단 한 번에 이 말에 믿음이 생기는 사람도 드물 것이며 이해가 가고 믿음이 생겨도 그대로 살아가기는 더욱더 쉽지 않은 일이므로 정말 스스로의 생각이 꿈으로 이 세상이 보이는 날까지 그저 지금인 세월을 변함없이 지내는 것이다.
이 또한 원각경에서 방편으로 말씀하신 내용 중의 하나이다(理覺). (출처)-천석
탄허사상 특강(44): 원각경(圓覺經) 서문 1 (2015 03 15)
탄허사상 특강(45): 원각경(圓覺經) 서문 2 (2015 0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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